기업의 미래 경쟁자는 개인

새해가 열리는 정초에는 대부분 기대와 희망을 이야기 한다. 한해를 시작하면서 연하장과 덕담을 주고받는 것은 가장 인간다운 활동이다. 무릇 시간을 알게 된 인간은 앞날이 궁금하여 여러 가지 수단을 강구한다. 용한 점쟁이도 찾아가보고, 여기저기 전문연구기관의 한해 전망도 스크랩해둔다. 연초가 되면 여러 기관에서 경제성장률, 환율, 유가 등 비슷하지만 약간씩 다른 전망을 놓고 갑론을박도 한다. 종교단체에서도 연초 농사가 한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인 사실은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기업이 한해의 계획을 세우고 합리적인 투자와 경영을 하기 위해서 보다 정확한 분석을 필요로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어디 한 집안이나 기업에게만 그러랴. 세상에 용하다는 점쟁이들이 매년 이맘때면 스위스 산골에 모여 비장의 점괘를 내놓고 자웅을 겨룬다. 이를 듣기 위해 비싼 경비도 마다않고 수천명이 달려간다. 그만큼 미래는 우리들에게 영원한 미지의 세계요 곁에 두고 싶어도 항상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는 자식과도 같은 존재이다. 늘 걱정과 기대 속에서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일이나 일주일 앞의 일을 맞추는 것은 무척 어렵다. 하지만 일 년 또는 10년 후 일을 예측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덜 어렵다. 당장 사업에 성과를 내려면 단기예측이 정확해야 한다. 그것이 돈이기 때문이다. 장기예측은 대충 참고하면 된다. 하지만 긴 호흡이 요구되는 투자도 있다. 교육, 기간시설, 도시건설, 환경·자원 등은 단기보다는 장기적으로 잘 맞아야 엄청난 재원이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결국 그 조직의 미래를 결정짓게 된다. 60년 전 우리나라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나라인데 지금껏 빈곤의 그늘을 걷지 못하고 있는 나라와 대비해보면 그 차이는 명료하다.

이렇듯 잘 틀리는 일년 짜리 점괘보다, 또 너무 먼 2050년의 장기운세 보다 15년~20년 정도의 중기운세가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적당한 긴장감과 호기심을 유발하기에 아주 적합해 보인다. 지속가능한 기업경영을 이야기하고, 보다 책임있는 조직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적어도 중기 점괘를 잘내는 점쟁이를 찾아가 볼 일이다. 최근 미 국가정보위원회(National Intelligence Council)에서 발간한 2030년을 예측하는 ‘Global Trend 2030'이란 보고서는 바로 이런 욕구를 딱 맞춰주는 점괘인 셈이다.

2030년까지를 관통할 메가트렌드는 여간해서는 변하지 않는다. 적어도 앞으로 몇 년 동안은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메가트렌드는 매년 사업계획의 외부여건 분석에서도 중요한 한 자리를 차지해야 함은 물론이다. 메가트렌드는 새로울 수는 결코 없다. 새로우면 그것은 메가는 아니다. 트렌드란 단어는 사실 변화라는 말보다는 계속성이라는 말에 조금 가깝지 않을까? 하지만, 때에 따라 메가트렌드 중 어느 하나가 유독 커 보이는 그런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경영자는 본인의 판단에 따라 메가트렌드를 임의로 조합하여 자신의 경영여건으로, 그리고 실행계획으로 연결하면 되는 것이다. 여느 해와 비슷하게, 또 유사한 점쟁이들처럼 미 국가정보위의 ‘GT 2030’도 ‘권력의 분산’, ‘개인 권한의 강화’, ‘인구구조 변화‘, ’물·식량·에너지 문제 심화‘를 메가트렌드로 내놓았다. 먼저 눈이 가는 곳은 아무래도 개인의 권한이 강화된다는 ’트렌드‘다. 나머지 3개의 트렌드에 비해 조금은 어려워 보이기도 하고, 거대한 집체보다는 인간, 그것도 개인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인의 권한이 강화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중산층의 거대한 성장, 기아로 부터의 탈출, 교육기회의 확대, 의료보장 확대는 개개인의 삶의 패턴, 라이프 스타일을 확실하게 바꾸어 놓았다. 지구의 중산층은 여러 정의가 있겠지만 UN에서 쓰는 $4,000 ~ $17,000 사이의 소득을 가진 층이 Middle Incomers 또는 Middle Classes의 보편적 정의다. 중국, 인도 등 BRICs의 성장으로 중산층으로의 유입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고 2030년에는 지금의 3배 수준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개인의 권한이 커진다는 것은 메가트렌드에서도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글로벌 경제의 확대, 개도국의 성장,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제조 생산기술의 개발과 이용이 모두 이 중산층의 확대와 ‘原因과 結果’ 관계로 서로 엇물려있기 때문이다. 크게 보아 자동차를 사는 것도, 집을 새로 짓고, 여행 등 여가를 즐기는 것도 바로 이 중산층이 출발점이다.

개인의 권한이 커지면 어떠한 변화가 있을 지 생각해 보자. 국가나 커다란 조직이 아니어도 조만간 우리 앞에 닥칠 도전과제에 개인이나 소그룹이 해결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도 된다. ICT 즉, 정보통신기술의 발달, 빅데이터의 분석 등으로 개인이나 소그룹의 문제해결역량은 과거의 석학 또는 석학들이 모인 연구소 전체를 넘을 수 있다. 따라서 긍정적으로 보면 수많은 역량있는 개인의 성장은 지구적인 과제에 엄청난 해결능력과 돌파력을 의미할 수 있다. 동전의 다른 면을 보자. 개인의 능력 확대는 치명적인 파괴기술이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 존재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정밀타격기술로 테러를 일으킬 수도 있고, 사이버테러로 IT시대를 암흑으로 몰고 갈 수도 있고 바이오, 생화학 무기로 전대미문의 끔찍한 상황도 초래될 수 있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국가단위에서나 일어나고 통제될 수 있던 일들이 개인이나 소그룹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제는 엄연한 현실이고, 앞으로도 지속되고 확대될 상황이 되었다.

전통적인 재화에 대한 시장의 전체물량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지만, 시장의 작동 메커니즘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엄청나게 다양해질 것이다. 2030년까지를 가늠해보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수많은 문제와 도전과제가 나올 것이고, 그에 상응하는 해결책이 제시되는 多 對 多 시대 즉 Multi-Polar, Individual Empowerment 시대가 점차로 확산된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은 이제 시장의 성격규정, 소비자인 인간 개개인의 변화 방향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개인 권한의 확대는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어떤 관계를 형성할 것인가? 2030년까지 중기를 내다보면서 기업에는 무척 흥미로운 화두이다. 구매력이 배가되는 중산층의 확대와 기업에 의존을 줄이는 개인의 문제해결능력의 확대...

아마도 그 중간에서 기업과 개인 간에 치열한 영토전쟁이 있지 않을까?

황진택 KBCSD 사무총장